머슴 노릇을 제대로 하게 하려면
머슴 노릇을 제대로 하게 하려면
  • 남부섭 발행인
  • 승인 2008.03.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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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슴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궁금해서 사전을 찾아보았더니 “농가에서 고용살이 하는 사내”라고 되어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공무원들에게 국민을 주인으로 모시고 머슴처럼 일하라고 했다고 한다.
예닐곱 되는 사내를 머슴으로 들였다. 아침이면 주인이 깨워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논밭 갈고 거름내고 씨 뿌리는 것도 주인이 일일이 시켜야 했다.
때 맞춰 논밭 갈고 씨 뿌려야 하는 게 농사다. 어린 머슴이 무엇을 알겠는가.

우리의 공무원은 심하게 말하면 이런 머슴이나 다를 바 없다.
기본 업무이외에 누가 시키지 않으면 일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것이 공무원 자신들의 무사안일에서 비롯된 그들만의 문제인가.
10여년 전 독일 가스회사에 들렀더니 사장 옆방에 40대 초반의 후임 사장이 2년째 사장 수업을 하고 있었다.
사장 자리에 앉기 위해서 4~5년간 사장 수업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자주 만나는 독일 정부의 에너지국장은 10년이 넘는데도 그 자리에 앉아있다.
한국에 올 때는 꼭 필자를 만나보고 가는데 꽤 정이 많이 들었다.
그 사람 왈, 한국은 올 때마다 사람이 바뀌어 업무를 하는데 애로사항이 많다는 것이다.

10년 이상 에너지국장이 그 자리에 앉아있다는 것은 우리는 상상도 못 할일이다.
그들은 국장이 수평인사 이동이 없고 국장 밑에 과장이 4~5명 있지만 국장이 승진하거나 퇴임하지 않는 이상 그 자리에 오를 수 없다.
운이 좋으면 국장이 자리에 10년 이상 남아 있을 수도 있지만 운이 나쁘면 과장도 할 수 없다.
공무원으로 들어가서 국장 자리에 오르기까지 에너지 문제를 수십년 다루었으니 전 세계의 에너지문제를 한 줄에 꿰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누가 일을 시키지 않아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눈에 보이는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고 때가 되면 논밭 갈아 씨를 뿌리는 머슴인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한 자리에 길어야 2년, 보통 1년이면 다른 자리로 보내지거나 갈려고 인사 운동을 한다.
승진, 보직이 지상 명령인 공무원 세계에서 그들의 머리 속에 국민을 안중에 두라는 것은 말로 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보편적으로 어떤 행정 업무도 2~3년은 걸려야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다.
때가 되면 씨를 뿌릴 줄 아는 머슴이 공무원 세계에는 찾아보기 힘들다.
정부부처의 몸집을 키워 놓았으니 더욱 선 머슴이 기승을 부릴 것 같다.
기업은 만사를 제치고 수익을 창출하면 되지만 공무원은 법과 제도에 따라 움직여진다.
부처를 통폐합하는 것은 저차원의 정책이다. 그것으로 머슴처럼 하라고 될 일이 아니다.
일등 머슴이 될 수 있도록 행정 내부를 바꾸어야 한다.
표면적인 하드웨어 보다는 내면적인 소프트웨어의 개혁이 이루어져야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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