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기업인이 인맥이 있는 회사에 영업을 해서 입찰형식으로 계약하기로 합의가 되었다. 입찰형식을 빌리려니 최소한 세 군데는 입찰서류를 넣기로 하고 잘 알고 있는 기업 두 곳에 부탁을 했다. 그런데 입찰결과 부탁을 했던 기업에 낙찰되어 버렸다. 소위 짜고 친 고스톱에 피박을 당한 꼴이 되었다.
이와 같이 거래금액이 크지 않은 경우 우리 사회에서 다반사로 있는 영업사례이다.
하지만 공공기관이나 금액이 큰 사업은 입찰에서 짜고 하는 것은 요즈음 일반적으로 엄두를 내기 어려운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큰 공사라도 로비가 없는 입찰은 거의 없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지난해 교수들이 관련된 입찰사건 하나가 그 반증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로비가 이루어진다니 그쯤 이해하기로 하자.
일본의 고사리 장수가 중국과 무역을 하면서 한 · 중 수교 이전까지 약 10년 동안 톤당 1000불 가격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한국 상인이 중국에 진출하면서 톤당 7000불까지 올랐다.
일본 상인들은 중국에서 고사리를 수입하고 싶으면 기존 수입업자들을 찾아가서 협의하여 그들이 물량을 확보한 다음에 순차적으로 물량을 구매 했다. 절대 가격도 먼저 구입한 사람이 지불한 그 가격 이상을 주지 않았다. 경쟁구도를 만들어 내지 않는 것이다.
중국 상인도 세계적으로 유명하지 않은가. 그들은 동종 사업에 새롭게 진출하는 사람이 있으면 일정 수준까지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 준 다음 서로 경쟁을 한다고 한다.
유럽 상인들은 잘 모르지만 중국이 값싼 태양전지를 하나도 판매하지 못하고 있다. 저질, 저가 공세에 맞서 의도적으로 유입을 막는다기보다는 무엇이든 정상적이 아니라면 사회에서 대우를 받지 못한다.
이러한 오래된 사회 인식 때문에 유럽이 가장 많은 명품을 갖고 있다. 이러한 사회인식은 일본도 비슷해서 중국의 저가 태양전지가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이와는 달리 한국은 중국의 저질, 저가 태양전지의 무차별 유입으로 국내 태양광 업계가 줄도산의 위기에 내 몰리고 있다.
태양전지 뿐만이 아니라 싸구려 태양열 온수기도 한해 수 만개씩 팔리고 있어 국내 기업이 손을 놓은 지 오래다.
어느 유명인사가 한국의 미래는 없다고 했다. 선진국의 문턱에서 10여년을 헤매고 있는 한국을 두고 외부의 평가가 그렇다고 했다. 이유는 ‘너 자신을 모르기 때문이다’는 것이다.
몇년전에 ‘상도’라는 연속극이 있었다. 우리에게는 상도의라는 말이 없지도 않는데 우리 사회에서는 상도의가 무너진지 오래다.
자본주의는 시장경제가 핵심이 아닌가. 시장경제가 제대로 굴러 가려면 시장질서가 제대로 정립되어 있어야 하지 않겠나.
시장질서, 다시 말하면 그것이 상도의다.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투자를 많이 하는 것보다 시장질서, 상도의를 확립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상도의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인 동시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데 갖추어야할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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