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 없는 구태의 틀
반성 없는 구태의 틀
  • 임인철 지산홀딩스 대표
  • 승인 2014.05.12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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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인철 지산홀딩스 대표

3년 전쯤 유럽에서 사업 개발에 매진하고 있었을 때이다. 에너지 차관이 아프리카와 유럽지역에서 사업 개발을 하겠다고 전세기를 동원해 기업인과 언론인, 관련 공기업 및 공무원들과 함께 순방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당시로서는 막강한 실세 차관으로 불리던 인사의 방문 목적이나 성과를 왈가왈부 하는 것은 매우 불경스럽게 여겨지는 분위기였다.

물론 정부가 에너지자원 빈국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애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난 정부는 에너지 자원 확보와 원전 수출을 이루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실세 몇 명이 이런 사업을 주도하면서 관련 기업이나 정부부처는 그저 여행가이드나 자금창고의 역할 밖에 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많다.

작년 3월에 방영된 KBS 시사기획 창에서, 외국 정부와 교환한 71건의 에너지 자원 개발 관련 양해각서 중 오직 1건 만이 본 계약에 이르고, 나머지는 이미 폐기되었거나 33건은 여전히 협의 중이라는 보도를 하였다. 그렇지만 협의로부터 더 이상의 실적이 나올 것이라 예상하는 관계자들이나 국민은 없다. 상황이 이러하니 당첨 확률이 극히 낮은 복권 한 장 사려고 비행기를 세내어서 그리 바삐 세계일주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만도 하다.

가스공사, 광물자원공사, 석탄공사 등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에너지 관련 공기업 뿐만 아니라, 자원외교 광풍에 덩달아 휘말린 사기업들까지 부채 비율 상승과 사업 불확실성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현실이다. 어쩌면 양해각서의 무산을 오히려 다행으로 볼 수도 있다. 대내적으로 졸속으로 진행된 4대강 사업 및 각종 개발 사업들이, 대외적으로는 자원외교의 허언이 공기업의 채무를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늘려 놓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 다음 세대들이 짊어져야 할 큰 부담을 만들어 놓은 셈이다.

그러나 문제는 어느 누구도 이 지경을 만든 책임을 지려하지도 않고, 그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는 기이함이다. 막강한 권한은 있되 책임은 없는 대리인 문제가 전 분야에 걸쳐 확산되어 있고, 특히 일반 시민들에게 생소한 에너지 공급과 자원 분야에서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새 정부가 출범한지 2년째가 되어 가지만 과거 에너지 자원 정책에 대한 평가와 앞으로의 전략은 나오지 않고 있다. 오로지 밀양사태 해결과 원전비리 척결이 이 분야의 주요 과제인 양 부각되고, ICT에 편승해서 먹거리를 창출할 수 있는 것으로 둔갑하고 있는 현실이다. 공기업의 채무 급증의 원인을 정치적 결정 탓으로 돌리고, 관련 공기업들이나 관련자들은 오히려 전 정권의 희생자들로 자리매김하는 중이다. 지난 사업들을 재검토한다지만, 거의 대부분 철회 또는 지분매각으로 정리하는 수순을 밟는 중이다. 어쩌면 현 정부에서 에너지 자원 분야의 해외사업 추진은 거의 진공 상태가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몇 주 전 규제혁파에 관한 끝장토론이 열렸다. 인터넷방송 뿐만 아니라 공영방송까지 초유의 실황중계를 했다. 과거 문민정부부터 지금까지 행정개혁을 통해 규제 권한을 놓지 않으려는 관료들과의 전쟁을 치렀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그저 대리인 역할만 대과 없이 하면 된다는 식의 태도를 가진 관료들이 사명감 없이 권한 행사에만 급급했기 때문이다. 또한 시작만 있지, 과정과 결과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오랜 관행이 그대로 답습되었기 때문이다. 현 정부의 창조에 대한 화두에 대해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차가운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것도 그 이유이다.

각 분야마다 첨단기술과 자본으로 무장한 글로벌 기업들이 국가 단위의 산업경쟁을 넘어서는 방식으로 세계경제 질서를 새롭게 재편하고 있다. 이는 기존에 국가가 담당했던 역할이 점차 약화되어간다는 의미이다. 지금은 수천억대에 달하는 최첨단 전투기 대신에 저렴하면서도 우수한 무인항공기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는 1차 세계대전 시 전투기가 도입된 이후 거의 80년을 지속해오던 항공전략 및 시스템이 획기적으로 변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지난 40년 동안 우리나라의 에너지 공급과 자원개발, 에너지 수요, 연구개발 분야를 운영해왔던 전략과 틀에 대해서도 이러한 획기적인 변화가 절실하다. 10년~20년 후의 대한민국을 위해 각론이 아닌, 새로운 틀에 대해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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