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천에서] 독자에 대한 배려, ‘신문(新聞)’의 용어 정리
[양재천에서] 독자에 대한 배려, ‘신문(新聞)’의 용어 정리
  • 조강희 기자
  • 승인 2016.12.19 1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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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너지신문] ‘한국에너지’는 ‘신문(新聞)’이다. 이름만 보면 마치 LPG가스나 등유 같은 난방용 석유제품을 취급하는 어떤 업체일 듯 보이지만, 이래봬도 엄연히 ‘신문’이라는 매체에 대한 편견에 얽매일 수 없다는 당사의 방침에 따라 만들어진 제호다. 물론 그러한 연유가 있다고 해도 ‘신문’이 따르고 있는 다양한 규정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는 일이다.

‘한국에너지’는 에너지 업계를 전문으로 다루는 신문이다보니 업계 사람들이 구독한다. 전체 독자 중 거의 90%가 전문 업계 사람들이다. 나머지 7~8% 정도는 학교와 연구소, 관심이 있어서 보는 일반독자의 비율은 3%가 채 안 된다. 물론 이것은 지면 신문에 대한 비율이고, 뉴스레터와 인터넷 신문으로 보는 독자들을 포함하면 결과는 또 달라질지도 모른다.

독자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장황하게 한 것은 독자에 대한 배려가 신문에서 포기할 수 없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독자를 배려한다는 것은 독자가 알아 듣기 쉽도록 해 주는 것이다. 신문은 ‘새롭게[新] 들린[聞] 소식’이다. 영어로도 역시 새로운 것들 ‘news’라는 뜻이다.

한자어와 영어로 된 신문의 어원이 알려주듯이 신문에 게재된 새로운 것들은 신선하게 들린다. 그러나 전제조건이 있다. 그 뉴스를 구성하고 있는 단어들이, 용어들이 쉬워야 한다. 뉴스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새로움이 생명이지만, 그 새로운 것을 언젠가 한 번 들어본 것들로 이해시켜 주는 것이 뉴스를 만드는 신문사가 해야 하는 일이다.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요즘 그 일을 잘 해 주고 있는지 필자는 자꾸만 의문이 든다. 이런 의문이 드는 것은 ‘전문지’라는 것 때문이기도 하고, 불쑥불쑥 나오는 유식한 척하고 싶은 기질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둘 다 핑계이긴 한데, 그래도 핑계에 대한 변명이라도 해 보자면 이런 것이다.

필자가 다른 기자와 함께 잠시 대화를 나누던 중에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우리는 어차피 전문지 기자인데, 업계 사람들은 대충 용어나 상황을 아는 사람들이니 용어를 너무 자세하게 풀어줄 필요는 없지 않은가요?” 정확히 그 질문에 대해 어떻게 대답을 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하지만 대답이 적어도 “적극 동감!” 같은 건 아니었던 게 분명하다. 그 때나 지금이나 필자는 용어나 상황을 ‘최대한 또 최소한’ 설명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에너지 업계 용어 중 두 가지만 갖고 이야기해 보자. ‘REC’는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newable Energy Certificate)’라는 긴 개념의 약자다. 하지만 음향 장비를 취급하는 사람들은 그게 ‘녹음(Recording)’의 약자로 보인다.

PCS는 ‘전력변환장치(Power Conditioning System)’의 약자다. 하지만 불과 10여년 전 약간 저렴한 휴대폰을 가리켰던 ‘개인 휴대통신(Personal Communication Services)’을 이 이름으로 불렀던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의아했을 만하다.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은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런데 그것을 기록하는 것은 그것을 바깥으로 나타내는 행위다. 그것을 바깥으로 나타내는 것은 나 혼자 알고 있자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알았으면 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 그것을 알았으면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것을 앎으로써 어떤 손해나 이익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어떤 소식을 전하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정확한 소식을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상황을 쉽게 풀어 알리는 것도 정말 중요한 일이다. 자세한 상황, 세밀하게 정밀하게는 알리지 않아도 좋다. 

어차피 지면의 한정이 있다면 용어만이라도 신경을 써야 한다. 다문화 사회라고는 하지만 아직은 국어이자 공용어, 세종대왕이 제대로 만들어 잘 전해준 우리말이 있다. 그 우리말로 번역을 해야 한다. 아직 번역어가 안 나왔어도 혼자서라도 번역을 해야 한다. 풀어 쓴다고 덧날 일은 없다. 

‘켑코(KEPCO)’보다 아직은 ‘한전’, ‘한국전력’, ‘한국전력공사’가 우리 눈에 잘 들어온다. 귀에도 잘 들린다.

당사의 현 발행인 겸 편집국장은 어느 날 필자가 써 놓은 기사를 보고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자네, 이 글은 약간 어려운 것 같은데. 신문 문체는 초등학교 4~5학년 학생이 봐도 대충 알아들어야 하는 거야. 다시 써.”

다시 써야 할 기사를 여전히 쓰고 있지만, 교정의 범위라도 줄이기 위해 필자라도 뭔가 해보겠다는 마음을 먹어본다.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다양한 영문자 약어의 세계에서 해낼 수 있을까. 익숙해지지만 않으면 답은 있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많은 몇 %의 일반 독자들과 함께, 그리고 본인들이 익숙하게 알고 있는 것을 누군가에게 조금 더 알려 주기를 원하는 90%를 훨씬 넘는 전문가 독자들과 함께 해낼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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